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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시·에세이
작가박다빈
출판형태종이책
페이지수 260 Pages
인쇄컬러표지-컬러, 내지-흑백
판형 46판
출판사부크크
ISBN일반판매용
출판일2020.04.01
총 상품 금액 15,200

저자 소개

 
· 박다빈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쓰고
이야기집을 펴냅니다.
정답 대신 하나의 방향을 쓰고,
결과의 완벽 대신 마음의 충만감을 추구합니다.


· 카쿠코 매거진
카쿠코 매거진은 당신에게
쓸 만한 의미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친구, 가족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각각의 삶이 가진 특별함입니다.
같이 고민하고 각자 일어서며
당신과 나란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 블로그
https://brunch.co.kr/@parkdabin
 

번역자 소개 (번역서인 경우 입력해주세요.)

목차


지구상에서 갑자기 사라져야 한다면 ─ 6
욕구 처리 ─ 18
필요한 이야기 ─ 24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 28
연인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일 ─ 41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일 ─ 52
포대기 ─ 65
없으니까 좋아요 ─ 73
내 눈을 좋아하는 사람 ─ 77
그냥 한 소리 ─ 88
허영 ─ 99
시샘하지 않고 행복을 나누는 마음 ─ 100
단골 백반집이 문을 닫았다 ─ 102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닌 것 ─ 114
대책 없이 사귀는 일 ─ 119
마음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일 ─ 131
모르는 것들이 많아진다 ─ 138
아름다운 공동 생활에 관하여 ─ 146
언어의 밖에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 ─ 156
너무 가까워서 그래 ─ 168
한 번에 하나밖에 못하는 사람 ─ 175
해피 드림 식자재 마트 ─ 182
평생 짝사랑 ─ 195
왜일까 ─ 204
누군가의 거만함에 대처하는 일 ─ 218
존댓말 하는 어른 ─ 227
오래된 연인 ─ 234
옛 연인을 만나서 ─ 249

도서 정보


본문 미리 보기

그때껏, 나는 내 진짜 인생을 누구한테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내 진짜 인생은 언제나 화려하고 정갈한 무대 뒤에 있었다. 나는 그 근사한 무대 뒤의 허름한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거기서 살기로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그곳에 초대해 저녁을 먹이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꽃 피는 춘삼월의 늦은 오후, 새하얘진 매화나무 아래에서였다. 매화가 너무 환해서, 나도 조금은 환해지고 싶었다. 나도 매화처럼 살아 있고 싶었고, 살아가고 싶었다. 나는 장식용 조화가 되려고 내 온 인생을 바쳤다. 이제는 진짜 피어나고 향기 나는 매화 같은 인생을 살아 보고 싶었다.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아 보고 싶었다. (중략) 그날 내가 당신에게 보낸 매화 나무 사진은 단순한 매화 나무 사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고, 고백이고, 초대였다. 당신은 이게 웬 매화냐 하지 않고, 다만 매화가 곱다고 하였다. / 〈욕구 처리〉 중

나는 내 위선 때문에 이것저것 억지로 참으며 우리 관계를 폭발물로 만들 생각이 없다고. 그런 식으로 지내다 내가 터져 버리면, 그길로 당신을 잃고 말 건데(또는 당신을 다치게 하고 말 건데), 내가 왜 그런 바보 짓을 하겠냐고. 선해 보이는 게 다 뭐라고. 마냥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뭐라고. 그 허울뿐인 찬란함이 다 뭐라고. 나는 막연히 착해 보이는 사람 말고, 당신 곁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얄팍한 찬사나 나누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냐고. 서로에게 위선이나 전시하려고 우리가 연애를 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 〈필요한 이야기〉 중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언제나. 아무나 막 사랑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하여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 사람이 있는 어느 바다로. 배가 없다면 스티로폼 박스 하나 겨드랑이에 끼고라도. 그 헤엄이 초라하지 않게 느껴지는 신비는 얼마나 어지럽고 신명나는가. /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중

그 사람 생각에 너무 깊게 빠져 있을 때는, 나를 부르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 같아 눈앞이 어질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러내는 것이 내가 아니라 매번 그 사람이어서, 나는 어찔하였습니다. 그 현기증은 혹한에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따스하게 넘실거렸습니다. 그 아지랑이 같은 것이 자꾸 나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습니다. 내 입에서 자꾸 실없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병이었습니다. 낫기 싫은 병이었습니다. 흩뜨리기 싫은 춘곤증이고, 깨기 싫은 단잠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일〉 중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서로가 서로인 한, 서로는 서로를 도울 수밖에 없다고. ‘함께’라는 것의 본질이 그래서. 그냥 무사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된대요. 살아갈 의미가 된대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되고, 고귀한 희망이 된대요. 내가 원치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쓸 만한 인간이고, 이미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인간이래요. 그 말이 요 며칠 내 마음을 얼마나 아름답게 해 줬는지 몰라요. / 〈포대기〉 중

있는 게 있는 걸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부지런히 익히고 있어요. 있는 게 없을 걸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 손을 잡고 있긴 싫어서. 공포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당신을 마주 보고 싶어서. / 〈없으니까 좋아요〉 중

걔들은 내가 누굴 만나도, 그 관계의 끝부터 보는 사람들이야. 내가 상처받지 않았음 하는 마음으로. 친구 관계라는 게 그렇게 좀 묘하더라. 한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면, 우리는 걔를 과잉보호하기 시작해. 그러면서 준비해. 걔가 건너야 하는 이별의 순간을. 걔도 준비 안 하는데, 우리가 해, 그걸. 좀 상스럽게 말하자면, 걔의 옛 연인이 될지도 모를 그 사람을 걔랑 같이 욕할 준비를 하는 거지. 그래서 내 친구들이 오늘 자기한테 그런 거야. 자기한테서 자꾸 흠을 찾으려고 하고. 괜히 깐깐하게 굴고. 자기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도 자기한테 정 주지 않으려고 하고. 어쩌면 상처받고 싶지 않은 건 본인들인지도 몰라. 친구의 연인을 잃는 것도 어쨌든 상실이니까. 모르겠어. 다 뭘까. / 〈그냥 한 소리〉 중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직도 많은 것들을 흉내 낸다고 하였다. 그것들이 흉내가 아니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흉내 내다 보면, 그것이 자기 것이 되는 때가 있는데, 당신은 그때를 앞당기기 위해 항상 애썼다. 뿌리부터 좋은 사람이 아니란 사실에 좌절하고만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하면서. /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닌 것〉 중

양보 받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나는 내가 한 양보들을 떠올려 본다. 준 것이 받은 것보다 적을 때 생기는 부끄러움이 자꾸 분명해지고 커져야만, 내가 사람들 속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수 있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균형을 추구하되, 자잘한 손해 앞에서 너무 인색하게 굴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며 살아가자고. 가능한 한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감사히 이해받으며. / 〈아름다운 공동 생활에 관하여〉 중

나는 입을 벙긋거리다 말고 서 대리 뒤를 따른다. 사랑이 만수무강할 수 있다는 점을 믿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그것을 믿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내가 믿는 그것을 서 대리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가 못마땅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서 대리를 설득해 보고 싶은 마음은 조금 있었다. 서 대리가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사랑이 강건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 정도는, 서 대리가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그 희망을 품지는 않더라도, 볼 수는 있었으면, 했다. 그것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과 그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크게 다른 일이었기에. 물론 내가 가진 이 관념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 〈평생 짝사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