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잠깐! 비회원구입을 원하시나요?!
  • 부크크의 회원가입은 다른 곳의 비회원 구매보다 간단합니다.

회원가입

백범일지 상권, 김구 자서전

0개

|

후기 0

  • 배송일 : 영업일 기준 2-8일 내로 배송됩니다.
  • 환불규정 : 주문 후 인쇄되므로 배송이 준비된 후에는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분야전기/회고록 > 자서전
작가김구
출판형태종이책
페이지수 413 Pages
인쇄컬러표지-컬러, 내지-흑백
판형 A5
출판사본투비
ISBN 9791169172387
출판일2022.09.07
총 상품 금액 20,000

저자 소개

* 저자 : 김구(金九)
(1876-1949) 독립운동가·정치가.

본명 창수(昌洙). 호 백범(白凡). 김구(金九)로 개명하였다. 17세 소년 시절부터 훈장이 되었고, 동학당에 가입하여 동학혁명에 참가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단’에 가입하여 이듬해 귀국한 후 일본 낭인에게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었다.

이로부터 항일 무력 활동을 시작한다. 결사 단체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사쿠라다몬 저격 사건, 상하이 훙커우 공원 폭탄 투척 사건 등 이봉창·윤봉길 등 의거를 지휘하였다.

191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重慶)으로 옮길 때 이를 통솔하였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하여 사령관에 지청천(池靑天)을 임명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8·15광복 후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창설과 함께 당수가 되었으며 민족 통일 총본부 부총재·민주의원 총리를 역임하였다. 1947년도 과도 정부에 반대하고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에게 암살당하였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저서로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출판사 : 본투비 북스
BORN TO BE BOOKS

근본을 (널리) 펼쳐 (높이) 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모두 값지다.
본투비를 통해 각자의 삶에서 영웅이 되는 그날을 위해!

번역자 소개 (번역서인 경우 입력해주세요.)

목차

목차

저자의 말

백범일지 <상권>

머리말

제1장. 우리 집과 내 어릴 적
제2장. 기구한 젊을 때
제3장. 방랑의 길
제4장. 민족에 내놓은 몸

도서 정보

백범일지(白凡逸志) 상권, 김구 자서전

남녀노소를 위한 큰글자 책!

1. 큰글자 16 폰트 크기 도서
2. 초등.중등~어르신 눈 피로감 없는 큰글씨 책
3. 방과 후 한글 한자 병행 읽기 활용
4. 수능.한국사능력 역사 고취

《백범일지(白凡逸志)》
김구 자서전

김구
(1876년 ~ 1949년)
한국의 독립 운동가이자, 정치인.
아호는 창암(昌巖), 호는 백범(白凡), 세례명은 베드로이다.
19세에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가 39세에 이름을 구(九)로 바꾸었다.

- 독립운동일대기
- 대한민국 보물 제1245호 지정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9·10대 국무령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18·19·20대 주석

"어떠한 모략이나, 짐승 같은 추악한 마음도 치열한 애국심 앞에서는 언젠가 그 정체가 탄로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1947년 공식적 출간된 '국사원본' 윤문을 통해 유려한 문장, 쉽고 간결한 문체로재탄생했다. 단, 1929년과 1943년 각각 집필된 두 권의 친필본과 차이점이 있다.

대한임시정부의 27년간 상해와 중경까지 틈틈이 써놓은 국한문 혼용 친필원본과 독립운동사 연구로 귀중한 자료이다.

청소년 이상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자(풀이, 뜻)을 편집, 감수한 백범일지(白凡逸志)로 출간했다.

<상권> 백범일지: 1929년, 상해(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1년 정도 시간을 두고 지난 독립운동 회고하며 집필.

<하권> 백범일지: 김구 67세 되던 1943년경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 중에서...

“저는 최후로 한마디 모시고 하니 여러분. 앞으로 우리가 이제말한 것과 같이 우리 완전한 독립을 목표하고 우리 전민족이 나가는 길에 어떠헌 나라나 어떠한 민족이 나가 우리의 앞길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그자리에서 우리의 조상나라를 위해서 쪼금도 아끼지 말고 우리의 몸에 있는 피 근량대로 다 쏟아 바쳐야 됩니다”?1946년 3월 <3.1절 경축사> 중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고,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적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1929년)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일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