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차례 --------------------------------------------
5. 프롤로그
제1부(계1~10장)
13 / 계1장 <개요>
15 / 머리말(인사)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37 / 계2장 <개요>
39 /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1)
63 / 계3장 <개요>
64 /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2)
85 / 계4장 <개요>
87 / 천상 예배
101 / 계5장 <개요>
102 /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
113 / 계6장 <개요>
114 / 인을 떼시는 어린양
129 / 계7장 <개요>
131 /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143 / 계8장 <개요>
144 /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
151 / 계9장 <개요>
152 /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
161 / 계10장 <개요>
162 / 천사와 작은 책(두루마리)
제2부(계11~22장)
171 / 계11장 <개요>
173 / 두 증인과 여섯째 나팔
187 / 계12장 <개요>
188 / 여자와 용
203 / 계13장 <개요>
204 / 두 짐승
217 / 계14장 <개요>
218 /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노래 / 세 천사가 전하는 심판예고
224 / 복된 죽음 / 마지막 추수
231 / 계15장 <개요>
232 / 마지막 일곱 재앙의 예고
239 / 계16장 <개요>
240 /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
253 / 계17장 <개요>
254 / 큰 음녀 바벨론에게 내린 심판
269 / 계18장 <개요>
271 / 큰 바벨론 패망
287 / 계19장 <개요>
289 / 하나님 백성의 승전가 / 어린양의 혼인잔치
305 / 계20장 <개요> 307 / 천년 왕국 / 사탄의 패망 / 백보좌 심판
327 / 계21장 <개요> 328 / 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353 / 계22장 <개요>
354 / 새 예루살렘 내부 생활
356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367 / 에필로그
371 / 참고문헌
5. 프롤로그
제1부(계1~10장)
13 / 계1장 <개요>
15 / 머리말(인사)과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37 / 계2장 <개요>
39 /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1)
63 / 계3장 <개요>
64 /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2)
85 / 계4장 <개요>
87 / 천상 예배
101 / 계5장 <개요>
102 / 봉인된 두루마리와 어린양
113 / 계6장 <개요>
114 / 인을 떼시는 어린양
129 / 계7장 <개요>
131 /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143 / 계8장 <개요>
144 /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
151 / 계9장 <개요>
152 /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재앙
161 / 계10장 <개요>
162 / 천사와 작은 책(두루마리)
제2부(계11~22장)
171 / 계11장 <개요>
173 / 두 증인과 여섯째 나팔
187 / 계12장 <개요>
188 / 여자와 용
203 / 계13장 <개요>
204 / 두 짐승
217 / 계14장 <개요>
218 / 십사만 사천 명이 부르는 노래 / 세 천사가 전하는 심판예고
224 / 복된 죽음 / 마지막 추수
231 / 계15장 <개요>
232 / 마지막 일곱 재앙의 예고
239 / 계16장 <개요>
240 /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
253 / 계17장 <개요>
254 / 큰 음녀 바벨론에게 내린 심판
269 / 계18장 <개요>
271 / 큰 바벨론 패망
287 / 계19장 <개요>
289 / 하나님 백성의 승전가 / 어린양의 혼인잔치
305 / 계20장 <개요> 307 / 천년 왕국 / 사탄의 패망 / 백보좌 심판
327 / 계21장 <개요> 328 / 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353 / 계22장 <개요>
354 / 새 예루살렘 내부 생활
356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367 / 에필로그
371 / 참고문헌
도서 정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계19:7)”
21세기의 거리에 마스크만 다니는, ‘코로나 블루’시대,
밀레의 ‘만종’ 같은 아픔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만연한 시대다.
우리의 기도는 어느 새 긴박하고 간절해서 거칠고 투박해졌다.
거리의 네온사인, 한국교회의 화려한 조명, 인간의 우아함으로는
슬픔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해답은 ‘성경’에 있다.
예수의 품에 안기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자.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계15:5-7, 고후6:2).
계시록에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계1:1)”,
“때가 가까움이라(계1:3)”는 말씀이 나온다.
심판이란, 조짐과 예고 없이 한순간에 닥친다.
재앙이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소돔성의 유황불, 노아 홍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사전 조짐이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 14세기 유럽의 페스트 역시 예고 없이 닥쳤다.
지구상 모든 영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는,
계시록 1장 1절부터
우리에게 준엄한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봉인 하지 마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먼 훗날이 아니라, 속히 성취될 사건들이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이제 계시록을 읽자, 모든 이에게 공개하고 가르치고 설교 하자.
혼돈과 박해의 때, 심판의 소식과 구원의 소식을 듣게 하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무섭게 한국 교회를 위협하는
바벨론과 같은 적들이 있다.
성경을 인용하며 진리를 공격하는 사이비 이단들의 행위,
지혜의 위기, 무섭게 파고드는 세속화의 물결이다.
계18장의 사치 품목은 기가 막히고, 음녀는 온갖 사치를 몸에 감고 유혹한다.
세상과 타협하면 안 된다.
황금과 재물은 하나님의 빛 안에서는 가치를 상실한다.
"무서운 일이다! 고운 모시옷, 주홍색 옷,
진홍색 옷을 몸에 두르고, 금, 보석, 진주로 단장하던
이 큰 도시에 화가 미쳤구나!(계18:16;공동번역)”
큰 바벨론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바벨론과 로마는 사라졌고 또 그런 세상은
흔적만 남기고 역사 무대에서 퇴장 할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바벨론’ 역시 사라질 것이다.)
자랑이었던 그 위대한 황제와 왕의 이름도 잠깐 빛나고 사라졌으며,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 수도의 대화재(AD64년)는,
‘가이사’의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로마시민들은 건강을 자부했고, 돈을 자랑했지만 모두 죽었고 망했다.
천년만년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계17장).
당시 로마는 계시록 말씀을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세상 권력은 하나님께 있다(마4:10)’는 사실을 모른다.
원래가 왕이셨던 그리스도시다.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책이 ‘성경’이다.
계22:15에 ‘개’가 등장한다. 신약에서 유일하다.
계시록은 이를 역겨운 것이라고 질타한다.
역겨운 것은 ‘소돔 사람들’ 곧 동성애자들을 가리킨다.
그 외 ‘성(城) 밖에 남아 있는 자’들은,
술객, 행음자, 살인자, 우상 숭배자, 거짓말 하는 자,
그리고 부귀영화를 다 누린 자들로, 이들은 구원 가능성에서 배제된다.
불타는 유리바다를 건너(계15장)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9-22:5)에 들어 갈 성도들이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계19:7 ; ‘카리로멘 카이 아갈리오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다(계19:9)”
신부가 된 이들은 어린양의 피로 속량된다(계5:9, 14 ; 14:3-4).
‘혼인 잔치’에 대한 언급은 종말론적 대단원의 막이 내릴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림은 주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한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놓임을 받는다(계20:7)”
천년이 찼다는 것은, 모든 구속의 역사엔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들이 있는데,
계20:7은 그 시간이 도래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하나님의 때이므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벧후3:10, 계16:15).
‘마지막 나팔 소리(계10:7)’가 울리고 주의 호명이 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자.
요한 계시록은 말세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공포심 주는 말씀이 아닌,
고난, 위기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 소망의 복음이다.
혼돈의 시대 우리에게 주는 주님의 ‘사랑의 편지’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의 마지막 약속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계시록 독자들이 박해라는 고달프고 처절한 삶의 현실 안에서,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어 했던 확언으로, 초대교회의 소망 근거이자
인내의 원천이었다. 현재 성도들에겐 마지막 시대의 희망이다.
‘마라나타!’,
‘오십시오, 주님!’
21세기의 거리에 마스크만 다니는, ‘코로나 블루’시대,
밀레의 ‘만종’ 같은 아픔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만연한 시대다.
우리의 기도는 어느 새 긴박하고 간절해서 거칠고 투박해졌다.
거리의 네온사인, 한국교회의 화려한 조명, 인간의 우아함으로는
슬픔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
해답은 ‘성경’에 있다.
예수의 품에 안기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자.
지금이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이다(계15:5-7, 고후6:2).
계시록에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계1:1)”,
“때가 가까움이라(계1:3)”는 말씀이 나온다.
심판이란, 조짐과 예고 없이 한순간에 닥친다.
재앙이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소돔성의 유황불, 노아 홍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사전 조짐이 없었다.
일본 후쿠시마 쓰나미, 14세기 유럽의 페스트 역시 예고 없이 닥쳤다.
지구상 모든 영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는,
계시록 1장 1절부터
우리에게 준엄한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봉인 하지 마라 때가 가까우니라(계22:10)”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먼 훗날이 아니라, 속히 성취될 사건들이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하기 때문이다.
이제 계시록을 읽자, 모든 이에게 공개하고 가르치고 설교 하자.
혼돈과 박해의 때, 심판의 소식과 구원의 소식을 듣게 하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보다 더 무섭게 한국 교회를 위협하는
바벨론과 같은 적들이 있다.
성경을 인용하며 진리를 공격하는 사이비 이단들의 행위,
지혜의 위기, 무섭게 파고드는 세속화의 물결이다.
계18장의 사치 품목은 기가 막히고, 음녀는 온갖 사치를 몸에 감고 유혹한다.
세상과 타협하면 안 된다.
황금과 재물은 하나님의 빛 안에서는 가치를 상실한다.
"무서운 일이다! 고운 모시옷, 주홍색 옷,
진홍색 옷을 몸에 두르고, 금, 보석, 진주로 단장하던
이 큰 도시에 화가 미쳤구나!(계18:16;공동번역)”
큰 바벨론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바벨론과 로마는 사라졌고 또 그런 세상은
흔적만 남기고 역사 무대에서 퇴장 할 것이다.
(오늘날의 ‘디지털 바벨론’ 역시 사라질 것이다.)
자랑이었던 그 위대한 황제와 왕의 이름도 잠깐 빛나고 사라졌으며,
위용을 자랑하던 로마 수도의 대화재(AD64년)는,
‘가이사’의 것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로마시민들은 건강을 자부했고, 돈을 자랑했지만 모두 죽었고 망했다.
천년만년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계17장).
당시 로마는 계시록 말씀을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세상 권력은 하나님께 있다(마4:10)’는 사실을 모른다.
원래가 왕이셨던 그리스도시다.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책이 ‘성경’이다.
계22:15에 ‘개’가 등장한다. 신약에서 유일하다.
계시록은 이를 역겨운 것이라고 질타한다.
역겨운 것은 ‘소돔 사람들’ 곧 동성애자들을 가리킨다.
그 외 ‘성(城) 밖에 남아 있는 자’들은,
술객, 행음자, 살인자, 우상 숭배자, 거짓말 하는 자,
그리고 부귀영화를 다 누린 자들로, 이들은 구원 가능성에서 배제된다.
불타는 유리바다를 건너(계15장)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9-22:5)에 들어 갈 성도들이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계19:7 ; ‘카리로멘 카이 아갈리오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다(계19:9)”
신부가 된 이들은 어린양의 피로 속량된다(계5:9, 14 ; 14:3-4).
‘혼인 잔치’에 대한 언급은 종말론적 대단원의 막이 내릴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시사한다.
재림은 주님이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한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놓임을 받는다(계20:7)”
천년이 찼다는 것은, 모든 구속의 역사엔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들이 있는데,
계20:7은 그 시간이 도래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하나님의 때이므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벧후3:10, 계16:15).
‘마지막 나팔 소리(계10:7)’가 울리고 주의 호명이 있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하자.
요한 계시록은 말세의 비밀이 숨어 있는 공포심 주는 말씀이 아닌,
고난, 위기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 소망의 복음이다.
혼돈의 시대 우리에게 주는 주님의 ‘사랑의 편지’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주님의 마지막 약속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계시록 독자들이 박해라는 고달프고 처절한 삶의 현실 안에서,
그토록 간절히 듣고 싶어 했던 확언으로, 초대교회의 소망 근거이자
인내의 원천이었다. 현재 성도들에겐 마지막 시대의 희망이다.
‘마라나타!’,
‘오십시오, 주님!’